6월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깊은 밤 1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아저씨, 여기서 세워주세요."
내린 곳은 지난주 친구랑 처음 와서 얼음막걸리를 먹었던 동네.
고등학교 시절 가끔 온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는 거의 나와 인연이 없었던 동네.
나름 대학교 앞이라고 꽤나 다양한 종류의 술집이 눈에 띄였다.
지난주에 느꼈던 편안함 때문인가. 무언가에 취해 네온사인이 어지러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일요일 저녁이였기 때문인지 불빛은 평소에 비해 어두웠고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간 그곳은 청송막걸리 2층의 이름모를 Bar.
손님은 3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일요일 저녁이라서 사람이 없구나.'
자리에 앉아 잭다니엘 750ml 를 시켰다. 그리고 누가 말도 걸기도 전에
스트레이트로 5잔을 연속으로 마셨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래서 잭을 사랑한다니까요. 히히. "
그리곤 태어나서 처음.......
필름이 끊겼다.
..............................................................................................................................
7월 19일. 친구랑 술 마실 일이 생겼다.
고민이 됐다. 분명히 나 혼자서 750ml를 다 마셨을리는 없고,
어렴풋이 명함을 준 것 같은데............. 다시 가볼까?? 아 무섭다. ㅠ_ㅠ
일단 고민하기 싫어서 막걸리부터 한 주전자 마셔줬다.
역시 C2H5OH는 무모한 용기를 만드는 분자식이다.
"사실 이 위에 있는 Bar에 내가 남겨 놓은 양주 있는데 갈래?"
갔다.
"처음 오셨어요?"
"아뇨. 전에 잭 다니엘 남은 거 있을 거 같은데."
"이름이 뭐에요?"
"XXX요."
저쪽에서 대충 낯이 익은 바텐더가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찾아올게."
뭔가 불안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바텐더가 술을 가져왔다. 웃으며 말하길.
"지난번에 기억 나세요?"
"아..아뇨. 집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살아간게 기적이죠. 별일... 없었죠?"
"별일 없었어요. ㅎㅎㅎㅎ " (사실 약간의 일이 있긴 있었다.)
잭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내 이름 대신 적혀있는 건 내가 다니는 대학교 이름. 서X대.
내가 학교 동아리 명함을 줬을테니 그래서 이렇게 적혀있는건가...
아직 한잔도 입에 안 댔는데 얼굴이 달아오른다.
필름 끊긴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절대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 날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오신거 맞죠? "
"네. 제가 뭐라고 그랬나요?"
"특별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뭔가 많이 답답해 보이셨어요. "
"그 날 기분이 정말 최악이긴 했어요. 여길 왜 왔는지 기억도 안나고. 미쳤었나봐요. "
친구랑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얘기한다.
친구 : "너 진짜 미친거 아냐. 왜 그러냐 요즘. 돈도 막 쓰고 다니고. 술은 왜 혼자 먹고 다녀. "
나 : "스트레스 쌓여서 가슴이 답답해. 회사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뭔가 확 풀어버리고 싶은데 그럴만한게 없어. 할게 없으니 돈 쓰면서 스트레스 푸나봐. 한달 사이에 천은 날린듯 ㅎㅎ"
친구 : "소개팅 시켜줄게. 좀만 기다려봐. 8월달에 건수가 많이 들어올거 같애."
나 : "알았어. 고맙다 친구야 ㅎㅎ 근데 나 휴가 때는 뭐하지? ㅠ_ㅠ ."
친구 : "언젠데? "
나 : "7월 말......................."
친구 : "그 때까진 좀 힘들겠는데, 근데 8월에는 꼭 해줄게. "
나 : "그래. 그럼 휴가 때 뭘 하면 재밌을지 생각해보자."
여행, 쇼핑, 술, 클럽, 영화, 뮤지컬, 음악회, 도서관, 갤러리..
바텐 : "뭐 특별한거 없어요? 맨날 하는거잖아. "
친구 : "하긴. 이제 같이 할 여자친구도 없으니 다 혼자 해야 되네. ㅎㅎㅎㅎ"
나 : " 죽을래. -_- 나 자꾸 비참하게 만들지마. "
바텐 : "불쌍하다 진짜. 휴가 때 여기 와서 또 혼자 술 마시는거 아니에요? ㅎㅎㅎ"
나 : " 나 진짜 다시는 혼자서 술 안 마실꺼에요. -_-;; "
바텐 : "내가 소개팅이라도 시켜줄까요? 연대 다니는 친구 하나 있는데."
나 : "아 진짜? 몇 살인데요? "
바텐 : " 나랑 동갑이고 여기 근처 살아요. 키도 크고 괜찮아요. "
나 : "동갑이면 몇살? ㅎㅎ"
바텐 : " 뭐에요 ㅋㅋ 저 21살이거든요."
나 : "아 그래요? 할까? ㅋㅋ"
친구 : " 해해해. 나 같으면 당장 하겠다. "
바텐 : " 할꺼면 연락처 적어줘요. "
물론 안 해줄껄 뻔히 알지만...
나 : "나 진짜 불쌍해보였나봐. 저렇게 얘기하다니."
친구 : "불쌍해보이긴 할꺼야. 혼자와서 술먹고 1시간만에 필름 끊기는 사람이 흔하겠냐. 기억에 많이 남았나봐.ㅎㅎ"
나 : "와. 그날은 진짜 내 인생에서 파내고 싶어. "
친구 : "잊어버려. 곧 좋은 일 생길꺼야."
좋은 일은 무슨.
안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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